휴식공간/@--자작글

남편의 눈물때문에...

평지 2008. 11. 19. 14:42

해마다 김장때가 되면 벌어지는 풍경~

여든이 넘은 연로하신 아버님이 농사를 지어 배추한번 사지 않고

해마다 시댁에 모여 다섯집 김장하느라 시끌벅적했었다

날씨가 추워진다고 며칠전 부터 김장 걱정을 하신다.

 

이러 저러한 일로 18일날 뽑아서 20일날 김장하기로 동서들과 약속을 했는데

애써 농사지으신 배추 무우 얼까봐  걱정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20일까지  미룰수가 없었다

우리가 일요일 오후에 둘이 가서 배추 무우 뽑아서 김장 준비 한다고 했더니

넷째동서네 까지  오라고 하셨나보다

일요일 아침에 전화 드리니까 벌써 넷째네가  왔다고 한다

우리도 부랴 부랴 준비하고 시댁으로 가서  

 배추 200포기 무우 3가마를 뽑아다

배추 다듬어 절이고 무우 씻어놓고 양념거리 다듬어 놓고보니 엄청나다...

몇년동안  어머님이 이 많은일을 거의 혼자서 하시고

김장 담그는 당일날만 와서 속넣고도 힘들다고 했는데

이젠 다리가 아프셔서  못하겠다고 하시면서도

일은 우리보다 더 빨리 많이 하신다

 

월요일 오후에 절인 배추 위아래 바꿔서 손질해놓고

얌념거리 씻어 건져놓고

무채 썰어놓고나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식구들 하나둘  모여들어 둘째 아주버님이 가져오신 LA갈비와 등심 구워서 저녁 먹고

거실에서 동서와 갓이며 대파,쪽파를 썰고 있는데

갑자기 울남편이

"오늘 우리 집사람 생일인데 고깃국을 못끓여 줘서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닦아내고 

그말에 어머님도 "그말을 들으니까  나도 안됐어서 눈물이 난다"고 하시고

나도  "그말을 듣고 보니  너무 슬프다"고 울고

둘째아주버님이 옆에서 한마디 더 거드신다.

"세상에서 이렇게 슬픈얘기는 처음 듣는다"고 하시고 ...

모여있던 식구들은 모두 눈물 콧물을 흘리며 훌쩍이다가

온가족이 배를 움켜쥐고  한바탕 울다가 웃었다.

 

 우린 거실에서 파를 썰었고 식구들은 모여 앉아 TV를 보다가

파를 썰어서 눈이 매운것을  집사람 생일을 들먹이며 눈물을...ㅎㅎ

아침에  미역국 끓이고 남편이 감과 사과하나씩 썰고

호두와 아몬드넣고 사라다 만들고 새벽운동 갔다가 오면서 삼색떡 사다줘서

아침상 푸짐하게 먹고

출근해서  장미꽃 한다발 들고와서 안겨주더니

점심엔 친정 엄마 아버지, 동생이 선물 사들고 와서  다섯이서  해물탕으로 맛있게 먹고

 저녁엔 넷째 동서한테서 선물도 받고

둘째아주버님이 가져오신 고기 맛있게 먹었는데

남편의 능청맞은 연기와  재치에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실제로 돈없어서 집사람 생일 못해줬으면

시댁에서 이런말 꺼내기나 했을까?

덕분에 생일날 많이 웃었네요..

 

김장준비 완료하고  어머님이 좋아하시는 고스톱 타임~

시누이와 넷째동서와 나는 80되신 어머님께 당할수가 없었다 

밤 열두시가 넘도록 했지만 어머님이 일등이시다

뒷장도 잘붙고 손에 들어가는패도 좋고 당해낼수가 없어

낼 김장을 핑계로 12시 반에 끝을 내고 삼동서가 나란히 모처럼 시댁에서 잠을 청한다

얼마만에 시댁에서 자는잠인지..

집이 가깝다고.. 아이들이 있다고.. 매번 핑계대고

아무리 늦어도 집에와서 자던 난데

왠지 이번만큼은 시댁에서 자고 싶었다

마침 핑계댈 아이들도 없고...

 

잠자는 내내 어머님이 드나드시며 이불을 덮어 주신다

우린 더워서 이불 걷어내고 어머님은 덮어주시고..

어머님은 잠이 안온다시며 몇번을 드나드신다

어머님의 사랑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연세가 많으시니 이런 행복 앞으로 얼마나 누릴런지...

 

아침에 눈를 뜨니 7시

밖에 나와보니 얼음이 살짝 얼고 날씨가 춥지만

다행이도 바람이 없어  체감온도는 별거 아니었다

고무통이란 고무통은 모두 내어 놓고 물을 받아두고

아침 식사 마치고

동서들과 넷이서

물통 하나씩 차지하고 배추를 씻어 건져놓고

김장속 버무리려고 커다란 고무통 세군데다 나눠도

 엄청나다.

이건 완전 김치공장이다 

큰아주버님과 넷째 시동생과 내가 팔걷어 부치고

 버무리다가 힘이들어 하는 내가 보기 안쓰러운지

있는건 힘밖에 없다는 넷째동서가 시원 시원하게 마무리하고

 

 해마다  김장속을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서 넣다보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렸는데

올해는 높고 커다란 고무통위에 뚜껑 뒤집어서 올려놓고

 서서 김장속을 넣으니 다리도 안아프고 일도 빨리할수 있어서 좋았다

 

 김장하는 내내

어제 남편이 한말이 생각나서 우린 또  한참을 웃었다

어머님과 우리 네동서가 함께한 김장

사랑과 정성이 듬뿍 들어가서 정말 맛있을것 같다

듬직한 큰형님과 둘째형님, 등치로 보면 자기가 형님이라고 우기는 아랫동서..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시댁 마당에서 시끌벅적하게 온가족이 모여 김장하는 모습 그려본다

비록 김장은 힘들었지만 어머님과 동서들이 함께할수 있어 너무나  행복했다

 언제나 지금처럼 어머님이 건강하셨으면...

 김장을 하고뒷설겆이 하고나니 2시반이다

늦은 점심해결하고

올겨울내... 아니 내년 이맘때까지 먹을 김치 차에 싣고 집에 오는데 부~자가된 기분이다

2008/11/18